2013년 1월 5일 토요일

모정소반의 건강한 한식 밥상 , 세 번째 이야기

할머니의 품을 닮은 징광옹기와 구수한 된장

흙과 불의 조화로 구워 내는 옹기는 몸 안으로 물을 품고 몸 밖으로 공기가 드나들게 한다. 꽃샘추위로 등이 시린 초봄, 겨우내 정성스럽게 띄운 메주를 옹기에 차곡차곡 담고 간간한 소금물을 부어 첫 장을 담근다. 잡맛 없이 순하고 구수한 된장 맛은 그렇게 시작된다.

*<월간 헬스조선>에서는 푸드 칼럼니스트 모정소반(母情小盤)과 함께 조상들이 물려준 한식의 절기별 지혜로운 조리 법과 그 대표적인 식재료 기행을 2011년 2월호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음식 솜씨를 가늠하는 첫 잣대는 간 맞추기일 것이다. 제 아무리 걸고 볼품 있게 차린 밥상이라도 간이 맞아야 입에 붙는 법. 입에 딱 맞는 간이란 그리 간단하지 않아서 싱거우면 소금을 더하고 짜면 물을 붓는다고 맞춰지는 것이 아니다. 맛의 근본을 잡는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등을 적절히 골라 쓰거나 절묘하게 섞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장류나 젓갈도 마찬가지다. 맨입에 먹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짜고 달며, 적당히 고소해야 한다.

장류나 젓갈의 적당한 맛과 향을 낼 수 있게 하는 일등공신은 바로 옹기이다. 잘 구워진 옹기는 물과 공기와 교감해 음식을 맛있게 숙성하고 보관한다. 백자나 청자, 분청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조형이나 색감이 다르지만 어느 한 나라, 한 지역에서만 만들어 내지 않는다. 하지만 옹기는 다르다. 질박한 모양새, 수더분한 색감을 가진 옹기는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 흙을 차지게 반죽해 조형을 잡고, 흙과 재를 섞어 만든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구워 내는 옹기가 없었더라면 그처럼 다양한 발효식품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 그릇 장수의 벌이를 두고‘옹기 장수는 다섯 곱이 남고, 사기 장수는 네 곱이 남고, 유기 장수는 여섯 곱이 남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옹기가 많이 쓰였기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아파트 생활이 대중화되면서 제일 먼저 없어진 것이 장독대였고, 그에 따라 옹기도 귀해졌으니 옹기 장수, 옹기장이는 더욱 보기 힘들게 되었다.

#흙과 잿물, 불과 공기의 조화로 굽는 옹기
장독대는 어머니에게는 일터였지만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였다. 아이는 ‘깨꽃’이라 부르는 사루비아에서 꿀을 빨고, 손톱에 붉게 물들일 봉숭아의 붉은 꽃잎과 푸른 새를 따며 노는 동안, 어머니는 항아리 뚜껑을 열어서 햇빛을 쐬게 하고 물행주로 연신 항아리를 닦아 가며 장 간수를 했다. 장독대 항아리 뚜껑을 열어 햇빛과 바람을 쏘아야 장에 곰팡이가 피지 않고 맛이 잘 들기 때문이다.

혹시 간이 약해 장이 부글부글 끓어 넘칠 모양이면 얼른 웃소금을 뿌려 가라앉혀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항아리 밖으로 소금기가 배어 나오거나 지저분한 불순물이 번져 나오는 걸 닦아 주기 위해 행주질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바람결에 날려 온 먼지나 꽃가루를 닦아 내는 것일 뿐, 소금기가 새어나올 정도의 독이라면 이미 그 장맛은 먹어 보지 않아도 버린 맛이다. 소금기가 배어 나오거나 바깥에 곰팡이가 핀 항아리는 설익은 항아리, 온전하지 않은 독이다.

항아리 고를 때, 어머니는 수박을 두드려 보듯 손으로 두드려 보아서 맑고 탱탱한 소리가 나는 것을 고르셨다. 바로 잘 구운 항아리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항아리는 흙을 빚어 구운 옹기이다. 찰흙에 물을 부어 반죽한 다음 ‘뚝메’와 ‘꽃메’로 힘껏 쳐서 멍울이 없게 다진다. 그러고 나서 낫 2개를 마주 보게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깨끼’라는 연장을 써서 비스듬히 얇게 저며 내며 잔돌이나 검부러기, 굵은 모래 따위를 골라 내는 ‘흙깍기’ 과정을 거친 흙으로 빚어 구운다.

‘광명단’을 쓴 항아리는 좋지 않다는 것쯤은 많이 알려진 상식. 광명단은 납 성분이 들어 있는 유약을 말한다. 600~700℃쯤 낮은 온도에서 구워도 겉으로는 윤기가 흐르고 멀쩡하지만, 두드려 보면 소리가 탁할 뿐만 아니라 장맛이 온전치 않고 무엇보다 몸에 해로운 납 성분이 스며들 수 있기에 옹기를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질색을 한다. 제대로 된 옹기는 흙과 재를 섞어 만든 유약을 입혀 구운 것을 말한다. 콩대나 소나무 등을 태워 만든 재에 흙을 섞어 가라앉힌 식물성 잿물이 제대로 된 유약이다. 이런 유약을 입힌 옹기는 1200℃ 이상에서 구워도 터지거나 깨지지 않고, ‘태토’라고 부르는 흙이 속까지 잘 익어 높고 맑은 소리가 나게 마련이다. 옹기의 태토는 몸 안에 물을 품고 몸 밖으로는 공기가 드나들게 한다. 창호지를 통해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옹기의 미세한 기공으로 숨을 내쉬기에 장류의 발효를 돕고 김치를 맛있게 익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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